그게 12년이나 되었던가 -

그게 12년이나 되었던가 - <- 천지화랑님 블로그에서 생각난 김에 트랙백.

12년 전, 그러니까 1997년 서울의 어느 초등학교의 3학년이었던 나는 툭하면 친구들하고 싸웠다. 야구들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거의 다 해태 타이거즈 팬이었고, 아버지를 따라서 막 야구를 보기 시작한 나는 맨날 코리안 시리즈에서 해태한테 지는 역할을 맡은, 또래에서 유일한 삼성 라이온즈 팬이었기 때문이다. 이종범이냐 양준혁이냐로 시작해서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면 호랑이가 이기냐 사자가 이기냐란 문제는 항상 호랑이가 이기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렇다. 해태는 최강의 팀이었다. 이승엽이라는 헐크를 대신할 거포가 삼성에 등장해서 MVP를 차지한 그 해에도 해태가 우승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에도 해태가 우승할 것이라 그 누구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해태였으니까.

급식비를 내지 못하는 친구들이 늘어났다. 집에 가면 컵라면만 먹는다는 녀석들도 생겼다. 집에 있는 돌반지는 전부 엄마가 가져다가 은행에 냈다. 이제 친구들 사이에서 자랑거리였던 외제품은 손가락질하는 물건이 되었다. 아이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문방구에서 파는 100원짜리 주먹만한, 아마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까지 쓰고 있을 검은 지우개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어느 날 들려온 양준혁과 임창용을 트레이드 한다는 소식은 이승엽과 양준혁을 신화로 알고 있던 나를 충격에 빠뜨렸다. 그리고 더 이상 해태가 최고라고 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이제 아이들은 박찬호가 뛰고 있는 LA 다저스에 열광하고 있었다.

나는 임창용이 싫었다. 아무리 잘해도 양준혁과 트레이드 되었다는 사실이 그를 용납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설령 그건 좋게 봐 줄 수 있다고 해도 끝끝내 포스트시즌에서 삼성 팬이라면 2002년 이전에 누구나 갖고 있던 한국시리즈 우승에 대한 갈망을 풀어주지 못했다. 내 기억 속의 임창용은 항상 가을만 되면 공 끝이 무뎌졌고, 패배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99년 시즌, 두고두고 명경기로 회자되는 플레이오프 7차전에서 진 후 학교에서 풀이 죽어있을 때에도 원망의 화살은 임창용을 향했다. 그 놈만 아니었다면 이길 수 있었는데. 그리고 한편으로는 해태가 더 미워졌다. 최고의 투수를 데려왔다는데도 이 모양인데, 이딴 쓰레기(당시 나는 진짜 이렇게 생각했다)를 데리고 해태는 어떻게 우승한 거지? 그 해 해태는 쌍방울의 바로 위에 있었다. 7위.

2002년, 드디어 삼성이 우승했다. 이승엽-마해영-양준혁이라는 강타자 가운데에서 이승엽의 동점 3점 홈런, 그리고 마해영의 역전홈런! 그리고 이미 그 때 해태라는 팀은 존재하지 않았다. 기아 타이거즈란 팀이 있을 뿐이었다. 이제 삼성에게 두려운 것은 없다. 남은 것은 아깝게 기록 문턱에서 좌절한 이승엽이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세우고, MLB로 건너가서 빵빵 터뜨려 주는 일만 남았을 따름이었다. 해태에서 LG로 이리저리 떠돌아다닌 양준혁도 돌아왔다. 그 해태를 만들었던 김응룡 감독 밑에서, 이제는 삼성이 신화를 만들 일만 남은 것이다. 정작 시즌 2위를 했던 기아는 플레이오프에서 LG에 졌다.

하지만 나의 이런 꿈(?)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승엽이 홈런 신기록을 세우고 일본으로 훌쩍 떠난 가운데 현대 유니콘스라는 강적이 등장했던 것이다. 정민태, 김수경, 임선동, 조용준, 박진만, 퀸란, 심정수. 이런 이름들은 예전의 내게 해태 타이거즈라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트라우마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2005년, 삼성은 그 전 해 배영수의 10이닝 노히트노런 무승부를 보란듯이 오승환의 삼진으로 다시 우승을 차지했다. 그렇다. 라이온즈는 라이온 킹이 없어도 충분히 강한 팀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아는 그 해 창단 최초로 꼴찌를 하였다.

이제는 엘롯기란다. 2000년 이후 단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하고 꼴찌를 번갈아가면서 하는 세 팀인 LG, 롯데, 기아. 이제 기아는 예전의 명성은 간 데 없고, 김태균이 한기주를 밀치면서 '비켜!' 라고 외치는 듯한 그런 팀이 되어버렸다. 내가 싫어했던 현대도 망해서 목동구장으로 이사를 간 후 히어로즈가 되어서 가입금도 제대로 내지 못했단다. 그리고 이제 내가 싫어하는, 아니 KBO에서 8번째로 좋아하는 팀은 SK가 되었다. 기아의 이미지는 이제 수비하다 엎어지면 뼈가 부러지는 낡은 광주구장과, 그 광주구장에 서식하는 물방개나, 아니면 엘롯기의 한 축을 담당하는 고양이가 되어버렸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났다. 한 소년이 처음으로 해태란 팀을 미워하기 시작할 때부터. 기아는 이대로 끝나는 줄 알았다. 이제는 노장이 되어버린 이종범이 은퇴하고, V9라는 비어있는 한 자리는 영원히 채울 수 없을 것 같았다. 또 다른 없어진 팀인 현대는 이제 용서할 수 있었다. SK도 아마 삼성이 우승을 한 번만 하면 용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아만큼은, 그 호랑이만큼은 다시 보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다. 시즌이 시작하고, 기아가 다시 꼴찌를 찾아 내려갈 때 까지만 해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그 해, 삼성은 13년 만에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내가 야구를 보기 시작한 이래로 처음 보는 삼성의 포스트시즌 탈락이었다. 그리고 12년 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던 내 기억 속의 호랑이가 다시 일어났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해태를 기억하고 떠올리고 있구나. 누가 프로 스포츠를 허위의식이라 비판할 수 있겠는가. 사직의 신문지, 문학의 연안부두, 대구의 위풍당당 양준혁, 광주의 목포의 눈물. 이 모든 것들이 괴로운 현실을 무디게 하고 비판의식을 감퇴시키는 아편이라고 조소할 수도 있다. 지역감정의 산물이라고도 비판할 수 있다. 물론 3S정책의 일환으로 프로야구가 출범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해태는 사람들 속에 기억되고 있는 실재하는 존재였다. 단순한 추억이 아닌 신화. 그리고 그것은 광주만의 신화가 아니다. 

단순히 '그깟 공놀이' 때문에 전날부터 매표소 앞에 텐트를 치고 현장판매 표를 기다리고 암표를 구하려는 것이 아니다.  야구는 인생같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야구에서,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의 뛰는 숨소리에서 꿈을 본다. 12년전 라이온즈가 우승하기만을 바란 한 소년의 소박한 꿈 처럼, 그 꿈은 더 큰 꿈으로 연결되어 하나로 흐른다. 이것이 야구의 위대함이다.

오늘 나는 '해태의 꿈'을 보았다. 한국시리즈에서 다른 팀을 응원해 본 것도 처음이었다. 아니, 타이거즈란 팀을 응원해본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아직 라이온즈는 한 번도 한국시리즈에서 타이거즈를 이겨본 적이 없다. 그래. 소년의 야구는 아마 이제부터 시작일런지도 모르겠다.


내년에 봅시다. 기아 타이거즈. 한국시리즈에서.


덧. 난 아직도 임창용을 싫어한다.

by 루치까 | 2009/10/25 00:44 | | 트랙백 | 덧글(2)

091024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는 것이 무척 오랜만이다. 그 사이에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 통학이 번거롭다는 핑계로 학교 앞으로 이사를 가서 시간이 남았음에도 별다른 글을 쓰지 않은 채 벌써 가을이 완연해졌다. 여러가지 글감을 '생각'만 하고 쓰지는 않거나, 임시저장한 채로 버려뒀는데 중간고사를 넘기고 2학기의 반환점을 돌았다.

원래는 휴학을 하고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기 이전에 약간의 시간 간격을 둬서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고 가다듬을 참이었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게 무산되어 버리는 바람에 다시 학교를 다니고 있다. 다행히 생각보다 시간적 여유는 많고 틈틈이 공부를 하고는 있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예전의 건강을 상당히 회복하고 있다는 데 위안을 둬야겠다. 비판해야 할 대상은 많다. 분노해야 할 대상도 많다. 그리고 맑시즘적 구조주의 역사관과 톰슨의 문화주의 역사관 사이에서 존재론적 방황을 하고 있다. 어려운 문제다.

by 루치까 | 2009/10/24 23:46 | | 트랙백 | 덧글(0)

[영화] 썸머 워즈 리뷰


썸머 워즈(サマ-ウォ-ス), 2009/
호소다 마모루(細田守)


여름은 숨막히는 계절이다. 빛의 산란이 적은 것인지 기분 탓인지 희여멀건한 하늘은 파랗다 못해 투명한 것이 보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고 내리쬐는 태양빛에 한껏 데워진 바람은 마치 콩 볶는 솥 마냥 훅훅 들볶는다. 몸에 열이 많아 가뜩이나 좋지 않은 몸에 더없는 과부하를 주는 날씨다.
그래도 답답하다. 뭔가 기분전환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그래서 뭔가 길을 나서기로 했다. 학교와 가까워서 평소에 잘 가는 대학로 CGV에 들어섰다. 굳이 예약을 할 필요는 없었다. 덕분에 좋은 자리에 앉아서 볼 수는 있었지만.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전작인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시간'을 다뤘다면, 이번 '썸머 워즈'에서는 '공간'을 다뤘다고 해야할까. 작중 배경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OZ는 인간의 삶의 영역이 그대로 인터넷 네트워크로 이전된 공간이다. 물론 몇몇 컴퓨터 전공자들은 어떻게 일반 네트워크와 수도나 가스 등을 다루고 있는 SOC 보안 네트워크가 함께 관리되냐고 반문하기도 하지만, 그런 기술적인 문제는 잠깐만 접고 넘어가자. 중요한 것은 OZ란 공간의 존재 자체니까.

OZ라는 공간 안에서는 누구나 어카운트를 개설하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어카운트를 만들 수 있으며 그 안에서 쇼핑을 하거나 스포츠를 즐기거나 무술 교습까지 받는 오프라인과 다름없는 삶을 즐길 수 있다. 실제로 작품에서 캐릭터의 개성을 OZ 안에서 표현하려는 노력은 영화를 보는 데 또 하나의 재미였다.
그러나 OZ 에서의 개인은 오프라인에서의 개인과는 다르다. 이전까지의 역사에서 역사와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소수에 한정되어 있었다. 작중에서 사카에 할머니는 가문의 당주로서 상상을 초월하는 인맥을 동원하여 러브머신 때문에 발생한 사회 혼란을 잠재운다. 그건 오프라인에서 할 수 있는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러브머신을 막기 위한 노력은 OZ에서 보다 본격적인 '행동'으로 표출된다. 오프라인에서 그저 중학생일 뿐인 카즈마는 '킹 카즈마'란 어카운트로 OZ에서 일종의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저 학교에서 인기있는 선배인 나츠키는 화투로 러브머신의 힘을 약화시켰다. 원래 수학 천재인 겐지는 조금 예외지만, 어쨌건 OZ의 보안 시스템 암호를 해독해냈다. 그리고 5억명에 달하는 어카운트를 가진 전 세계인은 스스로 '세상을 구하는 칩'이 되었다.
온라인은 그런 공간이다. 말도 안되는 것 같지만 화투로 세계를 구할 수도 있는 세계. 정말로 화투로 세상을 구원하지는 못할지언정, 한 개인이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고 증거를 채집해서 올리면서 부당한 체제, 사회구조에 맞설 수도 있는 세계. 그래서 온라인을 통제하고 막으려는 노력은 진행되고 있다. 지금 이 시간까지도.

또 한 가지, 한 개인의 힘이 세계를 바꿀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해진다면 그것은 충분히 한 개인의 힘이 세계를 파괴할 수 있을 정도가 될 수도 있다는 소리다. 와비스케는 러브머신에게 학습의 능력을 부여하여, 어쨌건 자신이 OZ를 혼란시키라는 명령을 내린 적은 없지만 하마터면 세계를 위험에 빠뜨릴 만한 단초를 제공했다.
이 점에서 영화에서 보여준 '기술자가 죄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시각은 조금 아쉬웠다. 물론 이 영화는 인간애를 다루면서 인간을 중심으로 세상을 그려내는 영화다. 와비스케에 대한 면책은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 한 불완전한 인간에 대한 면벌부일지도 모른다. 한 기술에 대한 과학자, 기술자의 도덕적 중립성의 보장 문제는 치열한 논쟁거리다. 하지만 한 인간의 탐구심이나 호기심 이상으로 보장되어야 할 것은 그 사람의 탐구심이나 호기심으로 파괴될 지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의 권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 역시 생각해볼 거리겠지.

면책론 얘기가 나온 김에 더 해보자. 그것에 대해서 논쟁이 있는 듯 싶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상대를 겨냥해서 일일히 언급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 영화는 정치적인 코드로 해석하면 끝이 없다. 다만 그렇게 보일 수 있다면 이 영화는 철저히 일본인의 관점에서 본 가족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충분히 일본적이다. 각자의 역할에 힘쓰고, 잘못이 있다면 책임을 확실히 하는 일본인의 사고방식에서부터 야구, 게임, 환상, 심지어 일본인들도 룰을 잘 모르고 오히려 그 옆 나라에서 더 인기를 끌고 있는 화투까지, 이 영화 구석구석에는 일본적인 요소들이 적절히 녹아들어 있다.

우리가 혈통을 중심으로 한 가문을 중시한다면, 일본은 혈통보다는 전통적으로 지역에 뿌리를 내린 가족을 중시하고 있다. 그래서 만스케 할아버지가 말하듯이 '우리는 이 땅을 지켜왔고, 앞으로도 지킬 것이다'라고 외치면서 러브머신과 새로운 싸움을 벌인다. 일본제국의 천황제는 이러한 일본인의 속성을 국가 단위로 확대시킨 가부장적인 통치체제다. 메이지(明治)시대 이뤄진 개혁들, 이를테면 판적봉환(版籍奉還)이나 국가 신토(神道)로의의 통합 등은 기본적으로 신으로부터 권위를 부여받은 만세일계(萬世一系)의 텐노를 야마토 민족의 정점, 가장격인 위치로 놓기 위한 일련의 조치들이다. 물론 텐노의 '인간선언'으로 일본제국의 가부장적 천황제는 막을 내렸다. 그 점에서 카미카제(神風)와 킹 카즈마가 비슷한 가족관을 보인다면 솔직히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가 일본인들의 무반성적인 전쟁관, 역사관을 보인다고 하면 크게 잘못 짚은 것이다. 과연 일본인들의 사고방식이 고작 메이지 시대에서 쇼와(昭和) 시대로 넘어가는 그 짧은 시기에 형성되었고, 이 영화는 그러한 사고방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인가. 그건 비약이다. 이 영화를 극우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은 원자로라는 요소를 끼워넣어 영화에서 '제국 일본'을 보고 있다. 물론 세상에는 이면이란 것이 존재한다. 하지만 본질을 간과한 채 이면만으로는 세상을 알 수는 없다. 우리는 '제국 일본'의 망령이 아닌 그냥 '일본'을 볼 수는 없는 것인가? 무엇보다 이 영화는 나조차도 앞에서 지겹게 늘어 놓은 그런 군더더기 뱀발 없이도 '가족'이라는 주제는 충분히 전달이 된다.

쓸데없이 글이 번잡해졌다. 그만큼 이 영화는 무거운 세계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호소다 감독의 전작인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마찬가가지로 영화 어디에서도 그런 무거운 분위기는 전혀 전달되지 않고 외려 평범함, 일상을 강조하려고 노력했다. 어쩌면 길게 생각하려는게 바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래서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은 OZ의 화려한 시스템 화면이나 나츠키의 변신 신이 아닌, 할머니가 돌아가신 직후 나츠키가 손을 잡아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이었다. 그 전까지 아무런 대사도 없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무거운 분위기만 정적으로 깔려있지만 평범한, 정말 평범한 여름 하늘이 그 앞에 펼쳐진다. 그 숨막힐 것 같은 색의 여름 하늘이. 그리고 그 하늘 하나로 모든 것이 전달되었다. 그것 하나만으로 이 영화는 볼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끝나고 밖에 나와 본 하늘은 이미 해가 져 있어 숨막힐 듯한 파란 색은 아니었다.

by 루치까 | 2009/08/18 00:44 | | 트랙백 | 덧글(2)

20대를 위한 비겁한 변명

[인터뷰]시사프로 진행자, '이대통령을 쏘다'
왜 20대는 분노하지 못하는가? <- 천지화랑님 블로그에서 트랙백.

(전략) “나를 386으로 오해하고 그렇다면 ‘너네들은 뭐했는데?’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어요. 저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20대 너희들이 비교할 대상은 386이 아니라 386의 20대다. 너희들이 지금 386세대의 나이가 되었을 때 운신의 폭이 좁아들더라도 지금의 386보다 더 열정적이고 패기 있고 역동적으로 시대를 고민하며,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다면 기꺼이 수용하겠다.’ 20대에 ‘투지’가 없다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만약 20대의 투지가 살아난다면 제가 기꺼이 ‘병신인증’을 하겠습니다.” (후략)


언젠가 과 클럽에 이런 글이 올라온 적이 있다. 아마도 90년대 학번 선배의 글이었던 것 같은데, '너희 후배들은 지금 인촌기념관이 4.18 기념관이란건 알고 있나? 그걸 지키지 못한 선배들의 잘못도 크지만, 학교 당국의 행정에 따라 선배들의 정신을 지켜가지 못하는 후배들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 아마 이걸 본 대다수의 현 재학생들은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학교에는 엄연히 '4.18 기념관'이 있고, 그 건물은 '인촌기념관'과는 엄연히 다른 건물이기 때문이다. 
난 그 선배가 누군지 모른다. 다만 그 선배께서는 당시 '제2학생회관'이라 불렸던 건물이 현재 '4.18 기념관'으로 개칭되었다는 사실은 모르고 계셨던 것 같다. 김용민 교수의 부연을 듣고 나는 이 일화를 떠올렸다. 이미 현재의 20대가 '4.18 기념관'이라고 부르고 있는 건물이 있다는 것을 모른 채, 과거에 그렇게 불렀던 건물을 두고 '너희는 왜 우리의 정신을 이어가지 않느냐'라고 꾸짖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현재의 386이 어떤지를 떠나서, 20대였던 386이 어떻게 투쟁했는지는 굳이 더 언급하지 않아도 그들이 현재의 한국 사회를 만드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386이 20대에 가졌던 80년대의 현실인식 태도를 2000년대의 현실인식 태도에 그대로 적용시킬 수 있는가 묻고 싶다. 왜냐하면 386이 20대에 마주쳤던 시대와 지금 21세기 초엽의 20대가 마주쳤던 시대는 너무나도 다르니까.
물론 정말로 20대가 '4.18 기념관'을 제대로 된 의식을 갖고 그렇게 부르는지, 아니면 그렇게 부르라고 시키니까 생각 없이 부르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민주화 1세대가 갖고 있는 비정치성의 한계까지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20대를 욕하고 싶으면, 그 전에 지금 20대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이해부터 하고 대답해라.

386은 정말 그렇게 모순에서 자유로운 세대인가. 20대는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배웠을 뿐이다.


덧. 예전에 김용민씨 인터뷰를 보고 쓰다가 도저히 완결이 되지 않아서 내버려뒀던 글이다. 사실 미완이다. 지금 봐도 이 글이 갖고 있는 논지가 견고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20대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는 한 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필자 역시 20대니까.

따라서 밸리에는 보내지 않겠다.

덧 둘. 부분적으로 수정했다.

by 루치까 | 2009/08/02 13:32 | | 트랙백 | 덧글(14)

지금 보이지 않는 손이 목을 죄고 있다

건국대학교 총학생회장 연행

작년 총학생회장 선거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현재 우리 학교는 재학생을 비롯하여 학내 구성원들에게 유, 무선 인터넷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본인의 신분을 입증하는 포털 아이디의 로그인이 필요하다. 즉 이 포털 아이디의 로그인을 학교가 통제함으로써 학내 감시를 획책하려 한다는 점을 들어, 이를 개선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선본이 있었다. 물론 그 이전에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학교에 복잡한 IP 신청 절차를 거쳐야 했기 때문에 그 공약에 많은 학우들이 관심을 갖지 않았으며, 심지어 몇몇 학우들은 '시대가 어느 땐데 저런 발상을 하고 있냐'는 식으로 냉소하기까지 했다.

별 이슈를 일으키지 못했던 탓이었는지 학교 측에서 안심하고 이용해도 좋다고 해명을 했는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며칠 뒤 문제를 제기한 대자보는 철거되어 있었고 해당 선본에서 다시 그 공약을 꺼내는 일은 없었다. 심지어 공식 정책자료집에도 빠져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니면 내가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비중이 적게 다뤄져 있었거나. 어쨌건 선거는 무사히 끝났고 새로운 총학이 출범했다. 그리고 '학내 인터넷 통제'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한 대자보가 있었고, 그것을 개선하겠다는 공약은 잊혀졌다.

솔직하게 고백하면 나는 '설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한 쪽이었다. 나 말고도 다른 동기들의 생각도 비슷했다. 나는 88년생이고, 내가 태어났을 때는 이미 제 6공화국이 들어서 있었다. 내 동기들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정치적 억압을 겪지 못한 '민주화 1세대'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는 88만원 세대다 뭐다 하지만, 최소한 나를 포함한 민주화 1세대가 사회에 대해 인식을 하기 시작할 때 쯤의 우리 사회는 그 정치적 지향을 불문하고 '민주주의'라는 상식이 통용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2009년의 한국, 학내 인터넷 인증 문제 개선 공약을 내세웠던 총학생회장은 수배가 되어 밤중 거리에서 영장도 없이 '사법납치'될 뻔 했고, 건국대학교 총학생회장을 비롯한 학내 집행부는 대공분실로 연행되었다. 연행된 건대 총학생회장은 그 자리에서 자신과 관련된 A4 용지 수천장의 증거자료라고 제시된 문서를 보았다. 불법 채증된 자료를 근거로 촛불집회에 참가했던 자들이 연행되고 있다. 아마 이 이글루스도 예외는 아니겠지.

1987년까지 한국 사회의 가장 큰 억압으로 제기되었던 문제는 폭력과 독재가 아니었다. 법의 범위 바깥에서, 사회 구조 아래서 숨어서 사회 구성원을 괴롭혀 온 신자유주의적 사회 질서, 즉 '보이지 않는 억압'이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로의 회귀, 이것은 더 이상 우리를 억압하고 있는 기제들이 우리 등 뒤에 닥쳐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해방의 수단으로 믿고 있었던 과학기술은 더 이상 피난처가 아니라는 사실도 밝혀진 지 오래다.

당신은 느껴지지 않는가. 우리 사회는 이미 위험한 수준에 와 있다. 지금, 보이지 않는 손이 목을 죄고 있다.

뱀발 : 뭐 내 사진 몇 장 정도 성북경찰서나 종로경찰서에 있는 것 쯤이야 알고 있었지만.

by 루치까 | 2009/07/08 22:59 | | 트랙백 | 핑백(1)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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