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25일
그게 12년이나 되었던가 -
12년 전, 그러니까 1997년 서울의 어느 초등학교의 3학년이었던 나는 툭하면 친구들하고 싸웠다. 야구들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거의 다 해태 타이거즈 팬이었고, 아버지를 따라서 막 야구를 보기 시작한 나는 맨날 코리안 시리즈에서 해태한테 지는 역할을 맡은, 또래에서 유일한 삼성 라이온즈 팬이었기 때문이다. 이종범이냐 양준혁이냐로 시작해서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면 호랑이가 이기냐 사자가 이기냐란 문제는 항상 호랑이가 이기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렇다. 해태는 최강의 팀이었다. 이승엽이라는 헐크를 대신할 거포가 삼성에 등장해서 MVP를 차지한 그 해에도 해태가 우승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에도 해태가 우승할 것이라 그 누구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해태였으니까.
급식비를 내지 못하는 친구들이 늘어났다. 집에 가면 컵라면만 먹는다는 녀석들도 생겼다. 집에 있는 돌반지는 전부 엄마가 가져다가 은행에 냈다. 이제 친구들 사이에서 자랑거리였던 외제품은 손가락질하는 물건이 되었다. 아이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문방구에서 파는 100원짜리 주먹만한, 아마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까지 쓰고 있을 검은 지우개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어느 날 들려온 양준혁과 임창용을 트레이드 한다는 소식은 이승엽과 양준혁을 신화로 알고 있던 나를 충격에 빠뜨렸다. 그리고 더 이상 해태가 최고라고 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이제 아이들은 박찬호가 뛰고 있는 LA 다저스에 열광하고 있었다.
나는 임창용이 싫었다. 아무리 잘해도 양준혁과 트레이드 되었다는 사실이 그를 용납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설령 그건 좋게 봐 줄 수 있다고 해도 끝끝내 포스트시즌에서 삼성 팬이라면 2002년 이전에 누구나 갖고 있던 한국시리즈 우승에 대한 갈망을 풀어주지 못했다. 내 기억 속의 임창용은 항상 가을만 되면 공 끝이 무뎌졌고, 패배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99년 시즌, 두고두고 명경기로 회자되는 플레이오프 7차전에서 진 후 학교에서 풀이 죽어있을 때에도 원망의 화살은 임창용을 향했다. 그 놈만 아니었다면 이길 수 있었는데. 그리고 한편으로는 해태가 더 미워졌다. 최고의 투수를 데려왔다는데도 이 모양인데, 이딴 쓰레기(당시 나는 진짜 이렇게 생각했다)를 데리고 해태는 어떻게 우승한 거지? 그 해 해태는 쌍방울의 바로 위에 있었다. 7위.
2002년, 드디어 삼성이 우승했다. 이승엽-마해영-양준혁이라는 강타자 가운데에서 이승엽의 동점 3점 홈런, 그리고 마해영의 역전홈런! 그리고 이미 그 때 해태라는 팀은 존재하지 않았다. 기아 타이거즈란 팀이 있을 뿐이었다. 이제 삼성에게 두려운 것은 없다. 남은 것은 아깝게 기록 문턱에서 좌절한 이승엽이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세우고, MLB로 건너가서 빵빵 터뜨려 주는 일만 남았을 따름이었다. 해태에서 LG로 이리저리 떠돌아다닌 양준혁도 돌아왔다. 그 해태를 만들었던 김응룡 감독 밑에서, 이제는 삼성이 신화를 만들 일만 남은 것이다. 정작 시즌 2위를 했던 기아는 플레이오프에서 LG에 졌다.
하지만 나의 이런 꿈(?)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승엽이 홈런 신기록을 세우고 일본으로 훌쩍 떠난 가운데 현대 유니콘스라는 강적이 등장했던 것이다. 정민태, 김수경, 임선동, 조용준, 박진만, 퀸란, 심정수. 이런 이름들은 예전의 내게 해태 타이거즈라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트라우마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2005년, 삼성은 그 전 해 배영수의 10이닝 노히트노런 무승부를 보란듯이 오승환의 삼진으로 다시 우승을 차지했다. 그렇다. 라이온즈는 라이온 킹이 없어도 충분히 강한 팀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아는 그 해 창단 최초로 꼴찌를 하였다.
이제는 엘롯기란다. 2000년 이후 단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하고 꼴찌를 번갈아가면서 하는 세 팀인 LG, 롯데, 기아. 이제 기아는 예전의 명성은 간 데 없고, 김태균이 한기주를 밀치면서 '비켜!' 라고 외치는 듯한 그런 팀이 되어버렸다. 내가 싫어했던 현대도 망해서 목동구장으로 이사를 간 후 히어로즈가 되어서 가입금도 제대로 내지 못했단다. 그리고 이제 내가 싫어하는, 아니 KBO에서 8번째로 좋아하는 팀은 SK가 되었다. 기아의 이미지는 이제 수비하다 엎어지면 뼈가 부러지는 낡은 광주구장과, 그 광주구장에 서식하는 물방개나, 아니면 엘롯기의 한 축을 담당하는 고양이가 되어버렸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났다. 한 소년이 처음으로 해태란 팀을 미워하기 시작할 때부터. 기아는 이대로 끝나는 줄 알았다. 이제는 노장이 되어버린 이종범이 은퇴하고, V9라는 비어있는 한 자리는 영원히 채울 수 없을 것 같았다. 또 다른 없어진 팀인 현대는 이제 용서할 수 있었다. SK도 아마 삼성이 우승을 한 번만 하면 용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아만큼은, 그 호랑이만큼은 다시 보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다. 시즌이 시작하고, 기아가 다시 꼴찌를 찾아 내려갈 때 까지만 해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그 해, 삼성은 13년 만에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내가 야구를 보기 시작한 이래로 처음 보는 삼성의 포스트시즌 탈락이었다. 그리고 12년 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던 내 기억 속의 호랑이가 다시 일어났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해태를 기억하고 떠올리고 있구나. 누가 프로 스포츠를 허위의식이라 비판할 수 있겠는가. 사직의 신문지, 문학의 연안부두, 대구의 위풍당당 양준혁, 광주의 목포의 눈물. 이 모든 것들이 괴로운 현실을 무디게 하고 비판의식을 감퇴시키는 아편이라고 조소할 수도 있다. 지역감정의 산물이라고도 비판할 수 있다. 물론 3S정책의 일환으로 프로야구가 출범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해태는 사람들 속에 기억되고 있는 실재하는 존재였다. 단순한 추억이 아닌 신화. 그리고 그것은 광주만의 신화가 아니다.
단순히 '그깟 공놀이' 때문에 전날부터 매표소 앞에 텐트를 치고 현장판매 표를 기다리고 암표를 구하려는 것이 아니다. 야구는 인생같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야구에서,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의 뛰는 숨소리에서 꿈을 본다. 12년전 라이온즈가 우승하기만을 바란 한 소년의 소박한 꿈 처럼, 그 꿈은 더 큰 꿈으로 연결되어 하나로 흐른다. 이것이 야구의 위대함이다.
오늘 나는 '해태의 꿈'을 보았다. 한국시리즈에서 다른 팀을 응원해 본 것도 처음이었다. 아니, 타이거즈란 팀을 응원해본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아직 라이온즈는 한 번도 한국시리즈에서 타이거즈를 이겨본 적이 없다. 그래. 소년의 야구는 아마 이제부터 시작일런지도 모르겠다.
내년에 봅시다. 기아 타이거즈. 한국시리즈에서.
덧. 난 아직도 임창용을 싫어한다.
# by | 2009/10/25 00:44 | 球 | 트랙백 | 덧글(2)




